본문 바로가기
우리의 웨딩이야기

신혼여행 북간도편

by thisissim 2020. 5. 18.
728x90

 

 

 

 


 

 

 

지난 이야기에서는 신혼여행 1,2탄을 들려드렸지요~?

오늘은 원래 백두산 편을 준비하려고 했는데, 사진첩을 돌아보니 중요한 곳들을 빼놓을 뻔했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래서 오늘 준비한 이야기는 '북간도 신혼여행' 이야기 입니다. 

 

이야기를 들려드리기 위해서 사진들을 하나씩 꺼내어보니 정말 저희 부부가 다녀왔던 곳들이 엄청난

곳들이었음을 다시금 돌아보게 되는 것 같아요. 

 

그럼 사진첩을 엿보는 것처럼 사진들을 설명하면서 이야기를 들려드릴게요.

 

 

 


 

 

연변 가는 기차를 타고 이야기를 맺었던 지난, 신혼여행 2탄에 이어갑니다.

대략 6시간 정도 기차를 탔을까요??

저녁 8시즈음이 되어 연변 역에 도착했습니다.

 

이날 숙소로 이동하여 늦은 저녁을 동네에서 사 먹은 후 얼른 잠을 청했습니다.  🌙

 

 

 

연변의 아침

 

날이 밝아오고 맞이한 연변에서의 아침!!

 

일어나서 창문을 내려다보니 공원에서 주민들이 나와서 에어로빅 같은 운동을 하고 있었어요.

음악도 크게 틀어놓고 운동하는 장면이 인상적입니다. 

 

참고로,

저희가 연변에서 보내게 될 일정은 소중한 친구가 잡아주었답니다.

그 친구가 알고 지냈던 귀한 분들을 저희가 소개를 받아서 처음 만나 뵙고 함께 했던 일정들이었어요.

 

 

 

 

 

연변과기대 조형물

 

연변에 갔으니 연변과기대를 당연히 가보았지요!

 

한동대학교와도 연결이 되어 있는 연변과기대는 제가 대학에 다니면서도 이야기를 많이 듣기도 했었고, 연변과기대의 부총장님이 오셔서 말씀을 전해주시기도 했었던 곳이랍니다.

 

이른 아침에 교수님께서 학교를 한 바퀴 산책하며 학교 이곳저곳을 소개시켜주셨답니다.

 

특히, 학교 안에 있는 조형물들의 의미를 하나하나 설명해주시는데

특별하고 소중한 마음들이 담겨 있더군요.

 

지금은 학생들 수가 많이 줄어서 비어 있는 건물들이 많았습니다.

 

교수님께서 해주시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개인적으로 마음이 많이 아팠어요.

처음 시작할 당시의 학교의 목적과 비전이 있는데, 여러 가지 상황들이 어려운 상황이었습니다..😥

 

 

 

 

 

 

용정 비암산 안내도

 

독립군의 자취를 밟으며....

 

교수님의 안내를 따라 용정 비암산으로 올랐습니다. 물론 차를 타고....ㅎㅎㅎㅎ

이 비암산의 정상에는 일송정이 있습니다.

저는 몰랐던 곡이지만, 가곡 '선구자'에 이런 가사가 있다고 하며 그 노래를 찾아들었어요.

 

' 일송정 푸른 솔은 홀로 늙어 갔어도,

한줄기 해란강은 천년 없이 흐른다... '

 

일제 강점기 때, 비암산 정상에 있는 소나무가 정자처럼 보일 정도로 커서 일송정이라고 불렸다고 합니다.

그 일송정이 우리 민족에게 중요한 이유는, 

이 일송정에서 독립군들이 자주 모여 회의를 했던 곳이기 때문인데요.

이때 독립군들이 자주 모이는 것을 불안하게 생각했던 일제가 강제로 소나무를 베어내었다고 해요.

1992년에 새로 이 자리에 소나무와 정자를 세웠다고 하네요.

 

 

 

 

 

일송정에 바람이 정말 엄청 붑니다.

 

 

일송정 앞으로는 흐르는 강이 해란강이라고 해요.

이 곳에서 바라보면 북간도가 한눈에 펼쳐져 보인답니다.

바람이 정말 엄청난데, 이곳에서 독립군의 의지가 

바람을 통해서도 전해져 오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지요.

 

 

 

 

 

 

 

간도 일본 총령사관 전시관

 

용정 일송정에 이어서 용정시 안에 있는 간도 일본 총영사관을 가게 되었습니다.

이곳은 일본 외무대신이 직접 관리했었던 곳이고, 연길, 화룡, 훈춘, 왕청, 안도 등 5개현을 관할하고 있던 곳이라고 하네요.  하지만 간도총영사관은 단순히 사무실의 용도가 아니었습니다. 일본은 본관 지하에 감방과 고문실을 두고 혁명자와 무고한 백성들을 잔인하게 심문했다고 해요.

 

 

 

 

간도총영사관 지하에 있는 감방

지하로 내려가 보니 이런 게 어두컴컴한 감방들이 있었습니다....

1909년 11월부터 1937년 12월까지 간도 일본 총영사관 및 소속 영사 분관에서 

항일투사, 무고한 백성 2만여 명을 체포, 살해했다고 합니다....😱

 

이 곳, 지하 고문실에서만 4000여 명이 희생되었다고 하네요...

차마 사진을 올리진 않지만, 이 곳 감방 하나하나마다 그때의 고문을 재현한 모형들이 전시가 되어 있었습니다.

 

왠지 모르게 빨리 나가고 싶었던 곳이었어요....

 

 

 

 

 

 

 

윤동주 시인 생가 옛터

 

만주는 기독교 신앙의 중심지로 수많은 독립운동가를 배출한 지역입니다.

1882년 최초의 한글 성서가 만주에서 발행이 됐다고 해요.

자료를 찾아보다 보니 성경의 'GOD'이 하나님으로 불리게 된 것도

만주 한인 기독교인들 사이에서 시작되었다고 하네요.

 

저희가 갔던 이 곳은 윤동주 시인이 태어나셨던 명동촌에 있는 생가. 다시 복원된 곳이었어요. 

그런데 정말 화가 나고 슬펐던 것은 윤동주를 기념하는 비석들과 안내 문구들마다 중국의 역사로 은근히 왜곡시킨 흔적들이 보였다는 거였어요...

 

 

 

실 제가 전에 연변에 왔었을 때, 윤동주 생각 앞에서 사진을 찍었던 생각이 나는데요. 그때는 겨울이어서 그런지

문이 굳게 잠겨 있어서 들어가지 못해 아쉬운 마음으로 돌아가야 했었어요. 그런데 이렇게 좋은 날씨에 생가 안에까지 들어와 볼 수 있어서 감사했지요~!

 

 

 

 

 

 

 

명동촌에 있는 명동학교

 

윤동주 생가와 아주 가까이에 있었던 명동학교.

김약연을 비롯한 민족지사들이 이 곳에 명동학교를 설립하여 문화 과학지식과 재능을 지닌 반일투쟁 인재들을 양성하는 데에 힘쓰셨던 곳입니다.

그 하나의 예로, 입학시험 및 작문시험에 반드시 애국과 독립의 내용을 포함시켰고, 매주 토요일에는 토론회를 열어 민족독립사상을 고취시키는 교육을 실시했다고 해요.

 

개교 이래 17년간, 1,000여 명의 애국청년들을 배출했던 명동학교! 자주독립을 위한 투쟁의 흔적이 남아있는 곳이었어요.

 

 

 

 

 

복원된 명동학교 교실 내부 모습입니다. 학생 모형이 있어서 옆에 앉아 본 신랑 😄

 

 

 

 

 

 

두만강 관광 부두에서

 

이곳저곳 독립의 발자국을 따라 걷다 보니 어느새 날이 저물어 갑니다.

아직 어두워지기 전에 들렀던 두만강 관광 부두 앞에서 사진을 남겼어요!! 

좁은 강폭을 지나 바로 뒤에 보이는 산이 정말 가깝게 느껴지시지 않나요?

북한이 저렇게나 가깝게 보인답니다.

 

 

 

 

 

 

하루 동안 정말 알차게 보냈던 것 같아요. 차로 이동하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돌아보았던 시간들이 

지금 생각해 보아도 신기하고 감사한 추억입니다. 🥰

지난 해가 3.1 운동 및 임시정부 100주년이었는데, 저희가 신혼여행을 다녀왔던 게 바로 작년이었거든요!

그 의미가 다시 생각해도 남다르고 특별하게 다가오는 것 같네요.

 

 

 

 

그러고 보니, 제가 신랑과 둘이 처음으로 봤던 영화가 [항거: 유관순 이야기] 였던 것도 참.... 음.... 신기하고 약간은 

소름이 돋으려고 합니다. 😅

 

 

 

 

다음 이야기에서는 정말로, 백두산 편을 들려드릴게요 ~!!!

'우리의 웨딩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신혼여행을 돌아보며...  (0) 2020.05.19
신혼여행 백두산편  (0) 2020.05.19
북중접경지역 여행을 가다, 신혼여행  (0) 2020.05.16
예수원 신혼여행  (0) 2020.05.15
폐백의 의미, 폐백음식  (0) 2020.05.14

댓글